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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역사

벤자민 프랭클린 생애·업적·명언·자서전 (과학자이자 정치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

목차

     

    이번 포스팅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생애·업적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1. 벤자민 프랭클린 살았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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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벤저민%20프랭클린>

     

    벤자민 프랭클린이 살았던 18세기는 미국 건국을 위한 독립운동이 본격화되고, 유럽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대표적으로 1754년부터 176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프렌치-인디언 전쟁은 북아메리카에서의 식민지 영토 다툼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프랑스는 캐나다를 잃고 북아메리카에서의 세력이 축소되었습니다.

    한편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과세 정책은 아메리카의 불만을 촉발시켰습니다. 1765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인지세법은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1773년의 보스턴 차 사건을 거쳐 1775년 렉싱턴 콩코드 전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립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으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공식 선언하였고, 1783년 파리 조약 체결로 독립전쟁은 종료되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러한 독립운동 기간 내내 유럽에 파견되어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도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하면서 부르봉 왕조가 몰락하는 등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2. 벤자민 프랭클린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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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벤저민%20프랭클린>

     

    벤자민 프랭클린은 1706년 1월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지아인 이민자 집안의 15명째 아들로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2살 때 형의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글과 인쇄 기술을 배웠고, 1723년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여 독립적으로 인쇄업을 시작했습니다.

    1729년 자신의 첫 인쇄소를 설립하고 펜실베니아 주의 공식 인쇄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가제트》 신문을 인수하여 편집장 겸 발행인이 되면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논설을 게재하는 등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742년 연료 소모 효율이 뛰어난 프랭클린 스토브를 발명했고, 1752년에는 나사를 이용한 천둥벼락 막대 설치를 제안하는 등 전기 분야 실험을 주도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미국 독립을 위해 큰 기여를 했습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 때 지역 민병대를 조직했고, 독립전쟁 기간 대륙회의 대표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776년부터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로 재직하며 프랑스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1787년에 열린 헌법 제정 회의에서 의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1790년 필라델피아에서 84세로 사망하였습니다.

     

     

     

     

    3. 벤자민 프랭클린 유명한 일화

    벤자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1752년 그가 치한 '파리에서의 나사 실험'입니다.

    당시 프랭클린은 번개가 전기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아직 확실한 증명이 없었습니다. 이에 그는 파리의 집 옥상에서 풍선을 이용해 구름 속 번개를 잡아내 나사에 흘려보내려는 위험한 실험을 기획합니다.

    실험 날,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프랭클린은 금속 나사를 달린 풍선을 옥상에 띄웠습니다. 곧 천둥번개가 치자, 번개는 풍선에 달린 나사를 따라 흘러내려왔고, 이를 본 프랭클린은 번개의 전기적 성질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과학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었지만, 매우 위험한 실험이었기에 아들을 동반했던 프랭클린의 행동은 무모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과학정신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4. 벤자민 프랭클린 주요 업적

    첫째, 과학기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742년 집안 난방을 위해 연료 소모 효율이 높은 프랭클린 스토브를 발명하였고, 이는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아울러 금속 나사를 이용한 천둥벼락 막대의 설치를 제안하는 등 전기, 기상학 실험을 주도했습니다.

    둘째, 언론, 출판 분야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지 편집장으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논설을 게재하며 당대 여론을 주도하였고,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정기 간행물인 《푸어 리처드 알마나크》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셋째, 미국의 독립을 위해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 시 민병대 조직, 대륙회의 대표 참여는 물론 독립전쟁 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로 재직하며 프랑스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미국 최초 공립병원, 소방서, 도서관 설립 등에도 앞장섰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정치, 과학, 사회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거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5. 벤자민 프랭클린 명언

    벤자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명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돈은 종이다. 그러나 시간은 금이다."

    "오전 4시까지 잔 것은 한낮 4시까지 잔 것이다."

    "절약은 수입의 최상의 원천이다."

    "근면은 행복의 어머니다."

    "무지는 담대하게 행동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정치인이자 과학자로, 지혜로운 명언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 시간의 소중함과 절약의 중요성 등을 역설한 그의 말들이 유명합니다.

     

     

     

     

    6.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벤자민 프랭클린의 대표적인 자서전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을 요약하면, 가난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인쇄업을 통해 재무적으로 성공하고, 과학자 및 정치인으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 자서전에서 프랭클린은 보스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살 때부터 일을 시작하여, 청소년기에 형의 인쇄장에서 일하다가 필라델피아로 이주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근면성실함, 지적 호기심, 독학으로 쌓은 지식이 재무적,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준 과정과, 과학자 및 정치인으로서 펼친 업적들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청교도적 가치관과 실용주의 정신을 반영한 자신의 인생철학과 독특한 사고방식을 진솔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7. 현재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

    첫째, 근면성실하고 끈기 있는 자세입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인쇄업을 통해 자신의 사업을 일궈낸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근면함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둘째, 혁신 정신과 실험하는 자세입니다. 프랭클린 스토브나 번개 실험 등 그의 과학 정신은 지금도 과학기술 발전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입니다. 그는 공공 도서관, 소방서, 병원 설립 등을 주도하며 공동체 발전의 기틀을 만드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교훈을 그의 삶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현대인들에게도 큰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8. 벤자민 프랭클린 관련 기사

    정치인+엔지니어+연애상담사? 건국의 아버지가 남긴 교훈
    2023.08.21 | 더밀크 | 김세진 기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은 진정한 ‘갓생’러였습니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갓(God)'과 '생(生)'을 합친 신조어로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인생을 뜻합니다. 그의 직업은 외교관, 철학자, 과학자, 작가, 발명가, 외교관 등으로 프로N잡러였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지금도 대부분 빌딩에 설치된 피뢰침(벼락방지침), 이중초점렌즈를 발명하는 등 업무 성과도 뛰어났죠. 그런데 프랭클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 또 있습니다. 바로 연애 어드바이저입니다.

    출처
    https://www.themiilk.com/articles/ae5415b7f
    [도인의 한수] 이휘소 박사와 프랭클린의 13가지 사명 선언문
    2023.12.03 | 최보식의 언론

    소설가 이용포 씨가 쓴 '이휘소: 못다핀 천재 물리학자'(작은씨앗, 2006)에 이휘소 박사의 영문 이름 '벤자민 리(Benjamin Whisoh Lee)’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설립자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1706~1790)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평생 수첩에 기록하고 다녔다는 '13가지 사명 선언문'을 이휘소 박사도 암기하고 있었다는 대목도 나옵니다.

    출처
    https://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12372